이강소, 끝까지 그리지 않는 사람
흔적을 남기고 물러서는 작업
선술집을 화랑으로 옮긴 전시
1973년 이강소(1943년생)는 서울 명동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단골 선술집의 탁자와 의자를 통째로 사들여 전시장에 들여놓았습니다. 관객은 작품을 보러 와서 그 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고, 남은 것은 잔과 자국뿐이었습니다. 제목은 〈소멸〉입니다.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는 바닥에 흰 가루를 뿌려 두고 살아 있는 닭이 지나가게 해 발자국만 남겼습니다. 작가가 형태를 만드는 대신 상황을 만들어 두고 물러서는 방식인데, 1970년대 한국에서 이런 작업을 하던 젊은 작가들의 흐름을 뒷날 실험미술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오리와 사슴, 배
1980년대 이후 그는 회화로 돌아왔지만 방식은 그대로였습니다. 화면에는 오리와 사슴, 배가 되풀이해 나타납니다. 다만 그 동물이나 배를 그리려고 그린 것은 아닙니다. 붓이 한 번 지나간 자리에 우연히 그렇게 보이는 형태가 남고, 작가는 거기서 손을 뗍니다. 그래서 획은 굵고 빠르며 여백이 넓습니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맞히려 하면 오히려 잘 안 보이고, 붓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멈췄는지를 따라가면 화면이 읽힙니다. 세라믹 연작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흙덩어리를 벽돌처럼 쌓아 올리다 어느 지점에서 그대로 두는 식입니다.
다시 읽히는 흐름
이강소가 출발한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은 오랫동안 국내에서도 낯선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 함께 기획한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가 서울에서 시작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돌면서 이 흐름 전체가 밖에서 먼저 정리됐습니다. 북미 미술관이 한국 실험미술을 단독 주제로 다룬 첫 전시였습니다. 이번 롯데뮤지엄 전시는 그 뒤에 오는 자리입니다. 실험미술 시기의 사진과 영상부터 최근 회화까지를 한 동선에 놓고, 반세기 동안 같은 질문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따라가게 합니다.
- ★official·롯데뮤지엄 — 이강소: 일어나고 사라지는(ko)
- ★official·Guggenheim —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en)
- ■press·뉴시스 — 45년 전 퍼포먼스 이강소 '선술집' 갤러리현대에 재연(ko)
- ■press·주간경향 — 한국 실험미술 대표작가 이강소(ko)